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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서강대 논술

조회 수 4452 추천 수 0 / 0 2005.12.30 15:39:18
extra_vars3 : 우리말지기 
2002 서강대 논술

[문제]다음 제시문들은 '쾌락'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을 보이고 있다. 제시문 [가]를 긍정적 논거로 활용하여 '쾌락'의 의미에 대해 논술하라. (단, 반드시 제시문 [나], [다], [라]의 내용을 구체적 논거로 활용할 것.)

[가] 모든 감성에 있어서 각기 거기에 대응하는 쾌락이 생길 수 있음은 분명한 일이다.(우리는 보는 것이나 듣는 것에 대해서 즐겁다고 말한다.) 또한 감성이 최선의 상태에 있으면서 최선의 대상에 대해서 활동할 때에 두드러지게 쾌락이 생긴다는 것도 분명한 일이다. 대상과 지각자가 모두 최선의 상태에 있을 때에는 언제나 쾌락이 있는 법이다. 거기엔 쾌락의 주체와 객체가 모두 있으니 말이다. 쾌락이 활동을 완전하게 하는 것은 활동의 주체에 내재하는 상태가 그렇게 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쾌락은 마치 한창 나이의 왕성한 기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르는 꽃다운 청춘과 같은, 부가적인 하나의 목적으로서 활동을 완전케 한다. 그러므로 지적 대상 혹은 감성적 대상과, 식별하는 능력 혹은 관조하는 능력이 다 같이 마땅히 있어야 할 상태에 있는 한 그 활동에는 언제나 쾌락이 있을 것이다. 주체와 객체가 다 같이 불변하고 또 같은 방식으로 서로 관계하고 있을 때에는 같은 결과가 자연히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무도 계속해서 즐거워할 수 없음은 무슨 까닭인가? 우리가 피로해지기 때문에 그러한 것인가? 사실 모든 사람은 계속적으로 활동할 수 없다. 그러므로 쾌락 역시 계속적일 수 없다. 쾌락은 활동에 수반하는 것이니 말이다. 어떤 일들이 새로운 것일 때 우리를 즐겁게 해주지만, 얼마 있으면 처음만큼 즐겁게 해주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것은 마치 어떤 물건을 우리가 응시할 때에 우리의 시각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정신이 자극을 받아 그런 일들에 대해서 강렬히 활동하지만, 얼마 후에는 우리의 활동이 이완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또한 쾌락도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살기를 희구하는 까닭에 또한 쾌락을 욕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활동이요 또 사람마다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것에 관해서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능력을 가지고 활동한다. 가령 음악가는 여러 가지 음률에 관해서 청각으로 활동하고,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론적인 문제에 관하여 이지(理智)로 활동한다. 그런데 쾌락은 이러한 활동들을 완전케 하며, 따라서 사람들이 욕구하는 삶도 완전케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쾌락을 찾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중략)… 사실 활동이 없으면 쾌락이 생기지 않으며, 또 모든 활동은 거기에 따르는 쾌락으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나] 쾌락이란 무엇인가? 이 말이 여러 가지로 쓰이고 있긴 하지만 가장 많이 쓰이는 용례로 볼 때 (살아 있다는 의미에서의) 능동성의 충족과는 무관한 욕망의 충족이라고 정의되기가 더 쉬울 것이다. 그런 쾌락은 강도가 높은 것일 수도 있다. 사회적 성공을 거둠으로써 느끼는 쾌락, 돈을 많이 버는 데서 느끼는 쾌락, 복권이 당첨됨으로써 느끼는 쾌락, 보통 말하는 성적 쾌락, 맘껏 먹는 데서 느끼는 쾌락, 경주에서 이기는 쾌락, 음주·환각·약품 등에 의해 고양된 상태, 혹은 살아 있는 것을 죽이거나 난도질하려는 격정을 충족시키는 데서 느끼는 쾌락 등이 예거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부유해지거나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바쁘다는 의미로 매우 활동적이어야 하지만 '내적 탄생'(birth within)이라는 의미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 목표를 성취했을 때 그들은 '스릴'을 느끼고 '아주 만족하며' '절정'에 도달했다고 느낄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절정인가? 아마 흥분의 절정, 만족의 절정, 환각적, 광란적 상태의 절정일 것이다. 이런 상태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은 그들의 열정이다. 그러나 이 열정은 인간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본질적으로 인간 조건의 적절한 해결을 향하지 않는 한 병적인 것이다. 그러한 열정은 더욱 위대한 인간의 성장이나 힘을 낳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불구로 만든다. 극단적 쾌락주의자의 쾌락, 항상 새로운 물욕(物慾)의 충족, 현 사회의 쾌락 등은 정도가 서로 다른 '흥분'을 일으키지만 '기쁨'을 갖다주지는 못한다. 실상 기쁨이 없기 때문에 항상 새롭고 한층 더 자극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 사회는 3천 년 전에 헤브루 인들이 처했던 상황과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사악한 죄악 중의 하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들은 모든 사물의 충만함 가운데서 마음 속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주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신명기 28: 47> 기쁨은 생산 행위에 따른 부수물이다. 그것은 절정에 이르렀다가 급작스레 끝나 버리는 '절정 경험'(peak experience)이 아니고 오히려 사람의 본질적인 능력의 생산적 표현을 동반하는 지속적 감정 상태이다. 기쁨은 순간적인 몰아(沒我)의 불꽃이 아니다. 기쁨은 존재와 함께 오는 빛이다.
쾌락과 스릴은 소위 절정에 도달하고 난 후에는 슬픔을 낳는다. 왜냐하면 스릴은 경험했지만 그 용기(容器)가 커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내적 힘은 증가되지 않은 것이다. 그는 비생산적 활동의 권태를 돌파하려고 시도하였고 잠시 동안 이성과 사랑을 제외한 그의 모든 에너지를 결합하였다. 그는 인간의 힘을 벗어나 초인(超人)이 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그는 승리의 순간에 도달한 것 같이 느끼지만 그 승리에는 깊은 슬픔이 뒤따른다. 그의 내부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에서
[다] 비에 젖어 흙투성이가 된 채 피로에 지쳐 집으로 돌아왔으나, 그날부터 그녀의 마음속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서 그 결과 지금 같은 타락의 세계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 무서운 비바람 치던 밤 이후, 그녀는 신(神)도 선(善)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때까지 그녀는 자신도 신을 믿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신을 믿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날 밤부터 아무도 신을 믿지 않으며, 사람들이 신에 대하여 또는 신의 계율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가 거짓이며 엉터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기가 사랑했고 또 자기를 사랑했던 네흘류도프는 한번 그녀를 농락한 후 그녀를 버리고 가버렸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 밖의 사람들은 모두 그에 못 미쳤다.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그의 고모들, 그렇게 신앙심이 깊은 노부인들조차도 그녀가 전처럼 일을 잘 못하니까 쫓아내고 말았다. 그녀가 만난 여자들은 모두 다 그녀를 보고 돈벌이할 궁리만 했고 또한 남자들은 그 늙은 경찰서장을 비롯해서 감옥의 간수에 이르기까지 그녀를 한낱 육체적 쾌락의 도구로만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는 모두들 쾌락만 찾는다. 이러한 확신은 그녀가 자유로운 생활을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해에 만난 늙은 소설가에 의해서 더욱 굳어졌다. 그는 모든 행복은 쾌락에 있다고 단언하며, 이것을 소위 시(詩)나 미(美)라고 불렀다.
사람은 그 누구나 자기만을 위해서, 자기의 쾌락만을 위해서 살고 있으므로 그들이 신이나 선에 관해서 말을 하는 것이 모두 거짓이었다. 무엇 때문에 이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나쁜 짓을 하고 고민하도록 혼란스럽게 이루어진 것일까 하는 따위의 의문이 생겼을 때는 일체 그런 일은 생각지 않도록 해야만 했다. 따분해질 때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거나, 아니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남자들과 재미를 보는 것이었다.
―톨스토이, {부활}에서
[라] 관능의 숭배는, 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이따금 비난받아 왔다. 그것은 인간이 그 자신보다도 더 강하다고 여기는 정열과 감정에 대해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고, 또한 인간만큼 고도로 조직화되지 않은 존재 형태를 가진 것에도 관능이 있다고 의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관능의 참다운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것을 야만적이고 동물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은, 그들이 아름다움에 대한 섬세한 본능을 그 지배적인 성격으로 하는 새로운 영성(靈性)의 요소로 관능을 승화시키지 못하고 굶주림과 고통으로 그것을 억제하고 말살하려 해 왔기 때문이라고 도리언 그레이는 생각했다. '역사' 속의 인간을 되돌아보았을 때, 그는 일종의 상실감에 사로잡혔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포기되어 왔던가! 더구나 아무런 의미도 없이! 거기엔 격렬하고도 완고한 거부(拒否), 기이한 형태의 자기 학대와 자기 부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공포심이며, 그 결과는 인간이 무식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려고 애써 온 그 상상적인 타락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타락이었다.…(중략)…
우리 시대에 야릇한 부흥을 보이고 있는 가혹하고 꼴사나운 청교도주의(淸敎徒主義)로부터 인생을 구할 새로운 '쾌락주의'가 일어나야만 한다. 그것은 틀림없이 지성(知性)에도 도움을 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떠한 형태의 것일지라도 정열적인 체험을 희생으로 하는 이론이나 체계를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실제로, 쾌락주의의 목적은 체험 그 자체여야 하는 것이지, 체험이 달든 쓰든 간에 그 결과여서는 안 된다. 관능을 죽이는 금욕주의에 대해서는, 역시 관능을 무디게 하는 저속한 방탕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쾌락주의가 전혀 관여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쾌락주의는 그 자체가 순간에 불과한 인생의 모든 순간에 자기를 집중하게 하는 것을 인간에게 가르쳐야만 한다. …(중략)…
우리는 그만두었던 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렇게 되면 판에 박은 듯한 습관이 똑같이 지루하게 되풀이되는 속에서 힘을 지속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는 두려운 느낌에 어느새 사로잡히게 된다. 어쩌면,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면 밤의 어둠 속에서 우리의 쾌락을 위해 새로이 개조된 세계, 모든 사물이 신선한 형태와 색채를 드러내어 일변하거나 그 전과는 다른 비밀을 간직한 세계, 과거는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적어도 의무라든가 후회라든가 하는 의식적인 형태로는 남아 있지 않은 ―희열의 회상에까지도 쓰라림이 따르고, 쾌락의 기억에도 고통이 있으므로― 그와 같은 세계가 찾아오기를 열광적으로 동경하게 될지도 모른다.
도리언 그레이에게 있어선 그와 같은 세계의 창조야말로 인생의 참다운 목적이거나 적어도 참다운 목적 중의 하나인 것같이 여겨졌다. 그리고 새로우면서도 즐겁고, 더욱이 로맨스에는 없어서는 안 될 그 이상한 요소를 가진 온갖 감각들을 추구함에 있어서, 그는 때때로 그의 천성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어떤 사고 방식을 받아들여, 그 미묘한 영향력에 몸을 맡기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를테면 그 색조를 포착하여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켰다.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유의사항 >
1. 띄어쓰기 포함 1,600자 내외로 쓸 것(±160자 허용).
2. 제목은 쓰지 말고 본문부터 시작할 것.
3. 수험번호, 성명 등 자기의 신상에 관련된 사항을 답안에 드러내지 말 것.
4. 한 편의 완성된 글이 되게 할 것.
5. 어문 규범을 지킬 것.


■ 서강대학교 논술 문제 해설
1. 출제 방향
○ 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견해를 펼칠 수 있는 논제인 '쾌락'을 주제로 하였다. 인간의 삶 속에서 '쾌락'의 의미는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쾌락은 금욕주의의 틀 속에서 그것의 부정적인 측면이 강조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서강대학교의 논술 문제는 수험생들에게 쾌락의 부정적 측면뿐 아니라 생산적 에너지로서 쾌락이 지니는 긍정적 측면까지도 함께 고려하면서 쾌락이 삶 속에서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하였다.
○ 이번에 서강대학교에서 출제한 논술 문제는 네 제시문에서 '쾌락'에 대해 보이는 인식 태도가 어떻게 다른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게 하고, 이를 논거로 하여 인간의 삶 속에서 쾌락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논술하게 하였다. 이러한 유형의 문제는 우선 수험생들에게 주어진 제시문을 정확히 분석하고 이해하는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하게 하고, 나아가 평소에 수험생들 각자의 사고와 행동 양식을 스스로 점검할 기회를 갖기 위해서 폭넓은 독서를 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 '쾌락'에 대한 상이한 인식 태도를 끌어내기 위한 제시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톨스토이의 {부활},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의{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가려 뽑았다. 세계적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부정할 수 없는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소유냐 존재냐}는 예민한 존재 탐색기의 고등학생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며, 소설 {부활}과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역시 고등학생 수준에서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논술 고사 실시 취지의 하나인 고전 읽기를 통한 인문적 교양 형성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예년과 같이 대표적 명작을 선택하고 그 명작에서 제시문을 뽑아 논제화하였다.
○ 서양의 고전에서 제시문을 골랐지만 이 작품을 사전에 읽지 않은 수험생일지라도 제시문만 정확히 읽으면 논술할 수 있는 문제를 출제했다. 이는 논술시험의 의의가 고전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읽기 능력과 거기에 바탕을 둔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과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표현 능력을 검증하는 데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특히 제시문을 정확히 읽고 분석하지 않으면, 출제자가 요구하는 깊이 있는 사고를 전개하기 어렵도록 문제를 구성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2. 채점 원칙(기준)
○ 논지가 요구하는 내용이면서 합당한 주장인가, 사고의 깊이는 어느 정도인가.
○ 논거가 타당하고 참신한가, 또한 제시문에서 적절히 찾아 썼는가.
○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의 연결이 논리적인가.
○ 서론, 본론, 결론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 정확하고 풍부한 단어, 자연스럽고 적절한 길이의 문장을 구사하고 있는가.
3. 출제의 유형 : 자료제시형(통합교과형)
4. 출제 및 채점 방침
(1) 논술 출제 계열 : 인문사회계열 (2) 논술 출제 문항 수 : 1 문제
(3) 반영 점수 : 100점
(4) 기본 점수 : 가채점 결과에 따라 신축적으로 부여함
(5) 전형 총점 : 1,000점 (6) 논술고사 시간 : 120분
(7) 답안지 분량 : 1,600자 내외(±160자 허용)


▶ 2002학년도 서강대학교 논술 예시 답안
'철학한다는 것은 타성에서 깨어나 생과 접촉하는 것'이라고 말한 이는 [푸른 꽃]의 시인 노발리스였다. 어디 철학하는 일뿐이랴. 타성과 인습에 젖어 나른하게 사는 이들이 주위에 너무 많다. 논제인 쾌락의 문제도 그렇다. 향락적 쾌락에는 어떤 비용도 지출해서는 안 된다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윤리}의 주장을 비롯한 많은 논변들로 인해, 우리는 무거운 금욕주의에 가두어진 채 쾌락의 본질을 올바로 성찰하지 못하는 타성에 젖어 있었는지 모른다. 물론 최근 억압적 금욕을 대신해 욕망의 해방을 주창하는 논의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는 쾌락의 문제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제시문 <가>는 그런 상황에 대한 반성을 유도한다. 진정한 쾌락의 추구를 통해 삶의 '푸른 꽃'을 볼 수 있게 할 지혜를 탐문케 한다.
막스 베버처럼 금욕과 절제를 강조하는 기존 담론의 질서를 <나>, <다>에서 확인한다. <나>에서 쾌락은 병적인 흥분에 불과한 것으로 단죄된다. 쾌락은 흥분의 절정에서 휘발된 채 진정한 인간 삶의 내적 탄생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일종의 소비적 쾌락론이다. <다>는 쾌락 윤리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녀'를 쾌락의 대상으로 삼았던 주체들의 타락한 쾌락 행사로 상처받은 그녀 역시 타락한 쾌락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쾌락의 부정적인 측면을 비판한 이야기다. 쾌락에 대한 이런 관점들은 금지나 억압의 시각으로 보는 도덕적 목적론에 입각한 것들로서, 반쾌락 이데올로기의 바탕이 되었다. 우리가 쾌락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까닭도 여기 있었다. 반면 <라>는 쾌락의 창조적 생산성을 중시한다. 청교도주의에서 쾌락주의로의 이행을 통해 억압된 인생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글에서, 쾌락은 소비적 부정성의 오명을 벗는다. 억압의 고통과 자기 부정에서 벗어나 승화된 쾌락의 열정적 행사를 통해 신생 창조의 신명을 지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쾌락을 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그것들을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눈을 <가>는 제공한다. 역동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쾌락은, <나>의 주장대로 순간의 흥분 상태가 아니라, 구체적 상황 조건에서 적절하게 고양된 상태로 인간을 인도하는 긍정적 에너지다. 이를 위해서는 쾌락의 주체와 대상이 모두 최선의 상태여야 한다. 이런 쾌락은 활동을 완전케 하고, 삶도 완전케 하는 것이다. 쾌락과 연결된 활동, 활동을 불러일으키는 쾌락, 활동으로 이끄는 욕망의 조화로운 연쇄는 존재를 고양시키는 역동적 운동을 통해 마침내 최고선에 이를 수 있다. 이때 쾌락은 <나>에서 '본질적인 능력의 생산적 표현을 동반하는 지속적 감정 상태'라고 한 '기쁨'과 <라>의 창조적 생산성을 함축한다. 또 <다>의 부정적 쾌락과는 성질이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쾌락은 더 이상 금지의 대상이 아니라 최선으로 추구해야 할 대상이 된다.
문제는 쾌락의 진정성과 역동적 활용을 통한 창조적 생산성의 모색이다. 문화 예술뿐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쾌락의 생산성으로 새로운 생기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재태, 현실태, 가능태 모두에 활기찬 생명의 감각을 부여하여 열정적 활동을 연출케 할 수 있는 기제가 바로 쾌락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쾌락을 통해 활기차고 풍요로운 삶의 의식을 매순간 지닐 수 있으며, 최선의 인생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억압과 금기의 사슬에 묶여 있을 때는 볼 수 없는, 열렬하면서도 의미 있는 생의 '푸른 꽃'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쾌락의 의미다. 쾌락에 대한 정당한 배려로 진정한 자기에 대한 배려를 실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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